만족도 조사
- 담당자 : 김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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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렌델이라는 괴물도 처치하고 한편으로는 그 유명한 흐로드가르 왕국의 ‘미드Mead’도 마실 겸 해서 왔노라.” 고대 스칸디나비아 영웅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베오울프>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이 용맹한 자가 찾는 ‘미드’는 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고대 스칸디나비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게임에 종종 등장한다. 살짝 입맛을 다셔보지만, 그 맛을 알 수는 없다. 《해리포터》를 보며 ‘버터 맥주’를 상상만 하던 나 같은 이들이 있고, 다행히도 활자로 쓰인 맛을 한 잔의 술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곰세마리 양조장은 후자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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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신림동, 비밀스럽게 꿀을 빚는 곰들
생소한 꿀술을 만드는 곰세마리 양조장의 시작이 궁금해요. 제가 듣기론 모두 ‘판타지 덕후’라고요.
유용곤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건 제 자취방에서였어요. ‘엘더스크롤’이라는 판타지 게임에서 항상 벌꿀주를 마시거든요. 호밍 브루, 블랙 라이어라는 이름의 양조장도 있고요. 또 고대 문학인 《베오울프》나 《반지의 제왕》에서도 꿀술이 나오고요. 어떤 술일까 궁금해하다가 직접 빚게 됐어요.
양유미 저는 원래 일러스트레이터예요. 이 친구처럼 게임 때문에 꿀술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니고요(웃음). 십년지기 친구가 양조장을 한다고 해서 술꾼인 제가 어쩌다 합류하게 됐어요.
나머지 한 분은요?
양유미 그 친구는 아무래도 장인 스타일인 것 같아요. 술에 대한 집착이 심한 대신, 드러내는 걸 싫어해요. 다들 곰 한 마리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요. 이상한 친구죠(웃음).
유용곤 친구들끼리 자취방에 자주 모여 술을 빚어 마셨어요. 제 자취방이 학교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거든요.
용곤 씨는 디자인 전공이고, 유미 씨는 영문과를 나왔다고 들었어요.
양유미 네, 학교랑 전공은 달랐지만 술 얻어먹으러 자주 놀러 갔어요. 거기에 가면 항상 술이 익을 때 나는 콤콤한 냄새가 훅 났죠(웃음). 언덕이라 공기도 좋아서 술 빚기는 좋은 방이었어요.
이름은 왜 ‘곰세마리 양조장’이라고 지었나요?
양유미 원래 상호명은 ‘비비스 브루어리’였어요. 텀블벅 후원도 그 이름으로 받았고요. 그런데 비비스 브루어리는 맥주 양조장 같기도 하고, 꿀술과 맞는 지점이 별로 없었어요. 꿀술은 영어로 미드Mead라고 부르는데, 미드라는 단어는 미국 드라마의 줄임말로 많이 쓰여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직관적인 이름으로 바꾼 거죠. 단순하게 저희가 세 명이고, 곰이 꿀을 좋아하니까 ‘곰세마리’가 됐어요. 상투성을 활용한 브랜딩을 한 거죠.
저는 세 분이 느릿느릿한가보다… 생각했어요(웃음).
유용곤 성격이 다 느긋하긴 해요. 사실 2015년도에 처음 만들고 3년간 판매용 술에 대한 개발을 계속해온 거죠.
양유미 저는 계속 지켜봐 왔는데, 이 친구들이 정말 만들기만 하고 팔지를 않는 거예요. 이 맛도 아니야. 저 맛도 아니야.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만들었다가 다 버리고요.
양조장이 마약 제조 공장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고요.
유용곤 남자 셋이 있었을 때는 양조장이 정말 세기말 같은 풍경이었어요. 저희가 하는 건 될 수 있으면 직접 만들자는 주의였거든요. 벽에 부착된 양조장 자동 온습도 조절 장치도 직접 만들었고요. 저건 인공지능이에요. 스마트폰으로 원격 접속해서 조절할 수 있어요. 크게 쓸 데는 없지만(웃음).
로고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들었는데, 세 마리 곰이 받들고 있는 둥근 원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용곤 직접적인 것보다 중의적인 이미지를 넣고 싶었어요. 조금 재미있는 게 내용물이랑 이 원이랑 색이 되게 비슷해요.
양유미 뭔가 생명의 정수를 뜻하는 건 아닐까요?
지금은 양조 설비가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빚었나요?
양유미 원시인처럼 유리통에다가 빚은 거죠(웃음). 스웨덴 총각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막걸리를 빚어 마시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죠.
유용곤 미국에서 ‘토끼Tokki’라는 증류 소주를 만드는 분이 있어요. 미국인이 생뚱맞게 뉴욕에서 한국식 증류 소주를 만드는 것과 우리가 관악구 신림동에서 고대 신화에 나왔던 꿀술을 만드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죠.
지역과 계절을 담아, 가장 자연스럽게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꿀술은 오리지널, 스위트, 어린 꿀술이 있죠? 각각 특징이 있다면요?
양유미 오리지널은 산미가 있는 편이라 레스토랑에서 페어링하기에 좋고, 스위트는 꿀술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죠. 어린 꿀술은 사춘기 드래프트라고 부르는데 이름처럼 청량해요.
제조 기간이 보통 어느 정도 되나요?
유용곤 보통 술이 익는 데 6개월 정도 걸려요. 쉽지 않은 흐름이에요.
양유미 ‘어린 꿀술’의 경우는 2개월 정도 숙성해요. 맛은 뒤지지 않아요. 완전하게 다른 개성이지만 완성도는 있죠.
사과 꿀술도 개발 중이라고요.
양유미 사과 꿀술은 탄산화가 진행되면 신기하게 복숭아 향과 살구 향이 강해져요. 아무래도 벌들이 꿀을 채취한 꽃에서 나는 향이 나중에 두드러지는 거겠죠? 그 부분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에요.
유용곤 앞으로 만들 술은 지역성이나 계절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꿀이 생산되는 지역의 수목 환경에 따라 꿀이 다르게 나오잖아요. 꿀이 있는 곳에 벚나무가 많다면 벚꽃꿀이 만들어지고, 유채꽃이 많으면 유채꿀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또 계절별로 다르니 봄에 나오는 봄을 위한 꿀술, 겨울을 위한 겨울 꿀술도 준비 중이죠. 겨울에는 넛맥이나 계피 등 계절에 어울리는 향을 넣어 만들 생각이고요.
마셨을 때 스파클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샴페인처럼요.
유용곤 샴페인을 만들려면 숙성실이 따로 있어야 해요. 또 주기적으로 뒤집어주고 발효가 끝나면 당을 추가하고, 얼려서 병목을 자른 다음 다시 막는 등 굉장히 복잡한 공정이 들어가죠. 그런 게 전통적인 방식의 샴페인인데 대부분 저가 샴페인은 탄산을 주입하기도 해요.
양유미 저희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해요. 하다 보니까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곰세마리의 꿀술은 인공감미료나 보존제 없이 꿀과 물, 효모로만 만들죠.
유용곤 네, 보통 와인을 만들 때 아황산염 같은 보존제를 써요. 포도는 과일이고 껍질에 붙은 미생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잡균을 억제하기 위한 용도죠. 꿀의 경우에 그런 걱정은 덜하지만 보존성을 높여주고 관리를 편하게 해주니까 써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술맛 자체가 많이 달라져서 그래서 아예 쓰지 않기로 했어요.
양유미 좋은 맛을 내려면 안 넣는 게 낫더라고요. 그걸 넣었다고 해서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꿀술의 종류가 다양하더라고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정향, 계피, 육두구 등 향료를 써서 맛을 낸 술인 머세글린, 라스베리, 블랙베리, 딸기, 과일 등 과실을 첨가한 벌꿀 술 멜로멜, 포도주스를 첨가해 발효한 피먼트….
양유미 네,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 꿀을 태워서 만드는 술도 있어요(웃음).
꿀술이 인류 최초의 술이라고 하고, 종류도 다양하고, 마셔보니 맛있는데 왜 일반 시장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을까요?
유용곤 우선 비싼 가격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판매하는 것도 36퍼센트가 꿀이거든요. 그래서 돈이 별로 없을 때 대형마트에서 저렴한 꿀을 사서 해봤는데 진짜 맛이 없었어요(웃음).
꿀술에 들어가는 꿀은 어디서 수급하나요?
유용곤 청계산에서 나오는 서울 꿀을 쓰고 있어요. 서울이 대도시라고 생각하지만, 산맥으로 둘러싸인 도시고 크고 작은 산이 많아요. 그 안에서 양봉을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 난 꿀로 술을 빚으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지금은 지역 꿀을 활용해 술을 개발 중이라고 들었어요.
유용곤 제주 유채꿀과 진해 벚꽃꿀로 개발하고 있어요. 수수칡꿀로도 해봤는데, 그건 정말 작품이었어요. 지인이 산속에 벌통 던져두고 채집한 야생 꿀이거든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안에 벌 다리 같은 것도 들어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정말 맛있었죠(웃음).
여러 양봉 농가랑 협업할 계획도 있겠네요.
유용곤 꿀을 사는 곳과는 항상 소통하고 있어요. 우선 계획하고 있는 건 지역에 있는 양봉하시는 분들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그분들은 꿀을 활용한 다른 여러 상품이 도움이 되니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난 꿀로 술을 만들어보니 어떤가요?
양유미 한국 꿀이 경쟁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해외의 모든 꿀술을 마셔본 건 아니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 친구들이 보내주는 꿀술을 시음해보거나 시음을 부탁해본 경우는 많아요. 미국에서 만든 꿀술은 아주 거칠고 세다고 해요. 하지만 캐릭터가 강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어떤 셰프 분은 이탈리아의 한 지역이 꿀술로 유명해서 마셔봤는데 저희 것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고요. 자랑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술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한국 꿀 같은 부드러운 맛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계적으로 꿀술을 빚는 양조장의 수가 많지 않은가 봐요.
양유미 전 세계에 꿀술을 빚는 미더리Meadery 중의 절반이 미국에 있는데, 그것도 몇백 개 정도로 아주 적은 수죠.
지하실에서 짓는, 양조 농사
처음 판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양유미 판매보다는 협업 같은 형태로 시작하게 됐어요. 호주에서 온 조셉 리저우드Joseph James EvettLidgerwood 셰프가 있어요. 그분이 한국에서 연 팝업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제가 디자인하게 됐어요. 작업을 함께 하다 제 친구가 술을 빚는다고 얘기하면서 시작이 된 거죠. 조셉은 지역 식재료에 집중하는 셰프예요. 마침 저희 술이 서울에서 빚은 술이었고요. 그렇게 음식과 페어링을 하면서 2월에 처음 꿀술을 소개하게 됐죠. 그리고 그 자리에 이찬오 셰프가 있어서 술을 판매하고, 강민구 셰프와도 연결되면서 밍글스에도 납품하게 됐어요.
유용곤 사실 처음엔 사업을 위해 거창하게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2018년부터 판매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술을 빚고, 별로면 다시 만들고 했죠. 아마 유미 씨가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였을 거예요. 생각보다 외부에 빨리 알려져서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흘러갈 줄은 몰랐어요.
저는 꿀술이라고 해서 작은 잔에 마시는 거라 생각했는데, 와인잔을 추천해주셨죠.
양유미 꿀술이 생소하다 보니 어떻게 즐겨야 할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사실 꿀술이 전통주로 소개된 경우가 많지만 저희는 그냥 술이었으면 좋겠어요. 굳이 어떤 범주 안에 넣어서 이 술 중에 좋다가 아니라 그냥 ‘좋은 술’이요. 지금은 전통주나 한국 술이라는 아이템으로 제시되다 보니 약주처럼 작은 잔이나 막걸리 사발에 따라서 드시기도 해요. 그러면 정말 맛이 없거든요. 와인잔으로 마셔야 향이 모여 향과 같이 마실 수 있죠. 여러 잔을 준비해 각각 따라 마시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꿀술을 잘 즐길 수 있는 잔을 만들려고 해요.
꿀술은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나요?
양유미 대부분 음식과 조합이 좋지만, 특히 해산물과 굉장히 잘 어울려요. 또 어린 꿀술은 오리지널보다 산미가 덜하거든요. 보통 음식이랑 페어링 할 때는 산미가 있는 술을 많이 써요. 입을 씻어준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마치 피클을 집어 먹는 것처럼요. 그런데 어린 꿀술은 산미가 덜 하다 보니 전천후의 느낌이 있어요. 굉장히 간단하고 의외였던 요리는 꼬막이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살짝 데친 꼬막이요.
양조의 즐거움을 꼽아본다면요?
유용곤 양조할 때는 꿀을 들이붓는데, 그때의 쾌감이 커요. 평생 먹지도 못할 양의 꿀을 콸콸 들이부을 때(웃음). 제일 좋아하는 순간 중에 하나예요. 꿀이 꿀렁꿀렁하면서 층을 만들며 퍼지는데 그것도 멋있어요.
양유미 그리고 양조는 농사와 비슷해요. 결과물에 대해서 약간씩은 다를 수밖에 없죠. 꿀이 항상 다르니까요. 그런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이 지하실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농사를 짓고 있는 거죠.
세 분이 일하기에 벅차진 않나요?
양유미 일을 하다 보니 양조장 일은 가족 비즈니스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영입을 못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믿을 수 있어야 해요. 술이라는 게 아주 작은 변수로도 달라지니까요. 정말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갈등이 있어도 술에 대한 애정으로 풀 수 있어야 하죠.
유용곤 저에게 1분만 줘도 양조장 안에 있는 모든 술을 이상하게 바꿀 수 있어요. 한 방울만으로도요.
서울에서 꿀술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은 어딘가요?
양유미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경리단의 한국술집인 21세기 서울에서 오리지널·스위트 꿀술을, 홍대의 올리앤로렌스에서 어린 꿀술을 드실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꿀술을 구매하려면요?
양유미 개인 구매 문의가 많이 와요. 저희도 예상치 못하게 일찍 판매하게 돼서 지금 예약하면 겨울에 받으실 수 있다고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에는 즐길 수 있게요(웃음). 최종 소비자가는 아직 미정이지만, 4만 3천원에서 4만 6천원 사이로 결정될 듯 하고요.
각자 전공이 다른데, 이런 일을 할 거라곤 예상 못 했을 것 같아요.
양유미 전혀요. 10년 전에 저희는 미대 입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예요. 저는 영문과에 들어갔다가 ‘그림을 그려야겠다’ 하고 학원에 간 건데 저는 탈락하고 이 친구는 붙었죠. 둘이 학원 지각해서 같이 벌서고 그랬어요(웃음). 그 후에 복학해서 다시 공부하다 같이 일을 하게 됐네요.
두 분을 보면 ‘이 일을 꼭 해야 해!’라는 느낌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좋은 것 같아요.
양유미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주를 빚겠다’고 했으면 오히려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지금도 못하는 걸 억지로 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할 수 있는 걸 잘하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